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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재연

작성자
본청/문화예술과(-)
작성일
2009년 6월 4일(Thu) 00:00:00
조회수
1951
첨부파일


1823(순조23) ∼ 1871(고종8). 조선 후기의 무장. 본관은 함종. 자는 성우이며, 용인의 아들이다. 1841년(헌종7) 무과에 급제 충청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66년 프랑스 로즈함대(프랑스극동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였을 때 (병인양요) 병사를 이끌고 광성진을 수비하였다. 이어 회령부사가 되어 북쪽 변경지방의 비적을 토벌 치안을 보함과 동시에 장시를 개설하는 등 변경무역을 활성화하였다.

1871년 미국 아세아 함대의 강화도 내침으로 신미양요가 발발하였다. 6월 1일 손돌목 포격사건이 발생 한미간에 최초의 군사충돌이 발발, 위급을 고하자 진무중군에 임명되어 광성보로 급파하여 60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광성보에 부임. 미군과 대치하였다.

6월 10일 미군은 강화도 상륙작전을 전개, 초지진을 점령하였고 6월 11일 덕진진을 함락시키고 마지막으로 광성보 공략에 나섰다. 이때 광성보에 수자기를 게양하고 침공해 오는 미군을 격퇴할 태세를 취하였다. 미군은 광성보에 대한 수륙양면 작전을 개시, 해상에서는 함포사격, 지상에서는 야포사격으로 초토화 작전을 전개하였다. 드디어 광성보로 돌입한 미군과 어재연군은 육박전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 그는 임전 무퇴의 결의로 칼을 손에 잡고 적을 무찔렀고 대포알 10여개를 양손에 쥐고 적군에 던져 항전하다가 장열하게 전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병조판서지삼군부사에 추증 되었으며 시호는 충장이다. 강화충렬사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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