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는 양헌수 장군이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강화군민들이 1873년(고종 10)에 세운 것으로 정족산성 동문 가까이 있다. 화강암으로 건립된 비의 총 높이는 181cm, 비신(碑身)의 높이는 163cm, 폭은 60cm, 두께는 27cm이며 단층 1칸의 비각 내에 안치되어 있다. 비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巡撫千摠梁公憲洙勝戰碑)’라고 음각되어 있고, 비 뒷면에는 장군의 공적이 수록되어 있다. 양헌수(1816~1888)는 1848년(헌종 14)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865년(고종 2)에는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강화도 탈환의 임무를 맡아 5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그곳으로 쳐들어오는 프랑스군을 격퇴하였다. 화력이 절대적으로 열세임에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양헌수의 뛰어난 전략 때문이기도 하다. 정족산성 전투 패배로 사기를 잃은 프랑스군은 곧바로 강화도에서 철수하게 된다. [참고문헌] 강화군·강화문화원, 『강화금석문집』, 200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웅진출판, 1997. 문화재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