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호, 꿈의 시작
유천호는 호기심 대장이었다.
유년기에는 동네 개구쟁이였고 청소년기에는 밴드부를 하며 청춘의 에너지를 발산하였다.
하지만 따뜻한 가족 안에서 그는 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버지, 닮고 싶은 목표
‘강화의 간디’로 불리던 유천호의 아버지는 강직하고 올곧은 성품으로 유명하였다.
손한 자세로 이웃을 돕던 그의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이
유천호의 가장 큰 인생목표이기도 하다.
전화, 인연의 시작
평택에서 군 생활을 하던 유천호는 어느 날 잘못 연결된 전화 속 그녀와
끈질긴 노력 끝에 결혼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얻은 두 아들들은 이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길, 하얀 눈 위의 첫 발자국
길을 여는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가시덤불과
위험한 돌을 치우며 어려움을 헤쳐 가는 리더이다.
유천호는 강화군민을 위해 길을 여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왔다.
기자, 영광과 고통의 시간
엄혹한 시대의 언론인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터뜨리자 협박전화에 시달렸고 집에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 특종상과 승진의 기쁨이 뒤따르기도 하였다.
생활체육협의회, 건강이 으뜸
생활체육협의회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몸소 체험한
생활 속 운동의 중요성과 건강의 소중함을 알렸다.
그는 5년 동안 꾸준한 등산과 운동으로 건강한 인생 3막을 열었다.
재향군인회, 국가사회발전에 기여
재향군인회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향군 회원과 보훈참전단체 회원을 위한
복지향상에 기여 하였으며, 불우이웃돕기, 재해현장 봉사활동 등
국가사회발전에 적극 참여하여 새로운 향군상을 확립하였다.
강화일꾼, 군민 말씀엔 ‘yes’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던 강화에 대한 고마움을 갚기 위하여
기꺼이 강화를 꽃 피우는 자양분이 되기로 결심했다.
군민들의 과분한 사랑을 돌려드리기 위해 강화군수에 도전하였다.
리더, 실천으로 말하는 사람
군민의 신뢰 속에 다시 한 번 봉사의 기회를 얻은 유천호는
더 일 잘하는 군수, 더 따뜻한 리더가 되기 위해
오늘도 강화의 길, 들판, 산, 바다 그리고 군민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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