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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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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레질노래

작성자
본청/문화관광과(-)
작성일
2022년 5월 31일(Tue) 11:46:06
조회수
1956
첨부파일

유래2

유래3

용두레


우리나라 농지조성 형태는 지형에 따라 저수지를 지정하고 추수를 마치고 몽리구역안에 농민들이 배수문을 굳게 막아 늦가을에서 봄 영농기 이전까지의 강우량을 저수하였다가 이농기에 이르러 높고 얕은 논에 물을 대는 것이 통례였으니 군청에서도 지도 권장하여 온 것이다. 1960년을 중심으로 영농방법이 기계화 되기 이전에는 우리 선조께서는 두레기 즉 공동작업반을 조직하여 자율적인 협동정신을 길러 왔다.

1960년을 중심으로 영농방법이 기계화 되기 이전에는 우리 선조께서는 두레기 즉 공동작업반을 조직하여 자율적인 협동정신을 길러 왔다. 물을 올리는 주된 연장으로는 재래식 용두레, 맛두레, 쌍두레 등을 들 수 있는데 우리나라 농민으로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농기구로서 농경지 구조에 알맞게 초안된 잠재시설로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농기를 앞두고 서로가 적기를 놓칠세라 용두레를 지반에 따라 5단계(다섯턱)까지 설치하고 저수답의 물이 줄어드는 것을 염려하여 물푸기를 하여야 했다.

제초제 사용이전까지는 수반에 있어서 반드시 3회 정도를 호미로 중경제초 작업을 하였는데 이때에 자연부락단위로 15명내지 20명으로 작업반을 조직 농악을 주로 한 두레기가 출동하여 "농자는 천하지대본" 이라는 기치아래 농악마당놀이로 흥을 돋구워 심신의 피로를 잊었다. 또한 건너마을 두레기와 친목을 다지는 기절을 주고 받으며 합세하여 평야가 운동하도록 한 마당농악놀이에 심취하여 스스로 놀이를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 날의 작업이 끝나면 넘어가는 햇빛을 등에 지니고 행진악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며 회정하는데 동리 길목에 이르러 한마당 파접놀이로 그 절정을 수 놓는다. 우리고장 농악은 용두레질 농악에서 연유되어 발전한 것으로서 숨어있던 농요와 가락을 소개하고자 한다.

농악과 민요, 무속음악등이 상고시대로부터 흘러내려 왔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반국민들에 의해서 전승된 민요와 농악놀이는 구비로 전승되어 왔고 사람에 따라서 서 로 다른 기준으로 다양하게 발전하여 왔다.
그렇지만 민요와 농악은 전문적인 소리꾼이나 놀이꾼에 의해 연출되는 것이 나이고 일반인의 생활속에서 대중음악문화로서 전통을 살려 온 것이다.
따라서 뚜렷한 작가를 알 수 없는 것이 민요나 농악놀이의 특징이다. 농어민의 민요는 대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으면서 지방색을
다분히 띠어 토속민요로서 황해도의 수심가를 받아 들이는 가하면 경기민요, 서도민요 형식으로 변형되어 지기도 한다.
이 고장 농악은 꽹가리, 징, 장구, 북, 호적, 소북등으로 편성되어 각종 민속행사에 적용되어 왔다.
농악은 거의 타지방과도 흡사하다 하겠으나 7채 가락으로 자진머리를 쓰는 편이고, 악곡으로는 생진악, 무용악, 답중놀이, 축가락, 제신가락, 막바지가락 등이 있는데
취악기로 는 호적만이 있었으나 때에 따라서는 관악기로 적,즉 쌍피리로 호적의 고적에 다 화음을 넣어 명쾌하게 조화를 이룬다.

▣ 노래의 특징
가사는 거의 상이한 형태가 대부분이며 가락에 있어서는 작업 성질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농요에는 농악이 곁들여지는 것이 통례적이다.
이 고장의 농요는 힘드는 과정 이 사뭇 크기 때문에 농요, 용두레질 노래와 김매는 노래가 매기는 앞소리와 받아 넘기는 후렴으로 숨을 돌려 가면서 이어진다.
특히 용두레질 노래는 숫자를 세지 않고 자유 자재로 작사하여 흥겨웁게 노래를 부르며 물을 퍼올렸다.
노래가 길게 울려 퍼지면 그 조화에 발 맞추어 작업능률을 촉진 할 것으 로 판단하여 술과 음식으로 노고를 치하하여 왔다.

▣ 쌍피리
지 적 쌍피리는 죽제 관악기이며 취악기로서 경기지방에서는 특별히 강화에서만이 실내 관악용 악기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피리는 옛날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역시 황적이 있었으며 궁중취악에도 사용하였으나 쌍피리는 강화의 독창적인 악기로 알려져 왔다. 특히 강화는 1232년 고려 고종이 이곳으로 천도하여 39년 동안을 항몽하였을뿐 아니라 고려속대장경판을 주조하는 한편 지금의 고려궁지 경내에서는 문화행사가 베풀어져 휘황찬란한 가운데 가무음곡의 축곡이 있었다 하였으니 이때에 창출한 쌍피리가 등장되었다고 전한다. 쌍피리의 음색은 명랑하고 잡음이 혼용되어 있고 간드러진 점으로 보아 5음 가운데 상음에 속한다

▣ 적 쌍피리의 구조
적 쌍피리의 구조피리대
음관 대의 명칭 신우대(직경 3분 10m/m)
대의 길이 6.5인치 18 - 19cm
- 두개를 명주실로 상하를 동여매서 고정시킨다.
- 음색을 구별하는 구멍은 전면에 5개, 후면에 1개를 만든다.
- 발음관 속칭 쇄라한다.(4cm)

쇄는 갈대 또는 갈당으로 만드는데 발음변을 얄팍하게 만들어 음색을 조절하여 음관 머리에 알맞게 꽂아 소리를 낸다. 갈대는 산야에 자생하며 갈당은 해변에서 자연생으로 발육하는데 강화특산물이다. 전면음공은 음색을 조절하며 후면음공은 높은 음색이 나오므로 음보에 의하여 조절된다.

▶진행과정 모찌기 몽리구역안의 농민들이 배수문을 막아 늦가을에서 봄 영농기 이전까지의 강우량을 저수하 였다가 이농기에 이르러 모찌는 노래와 함께 모찌기를 한다. 모심기 모를 짠후에는 모줄을 사용치 않고 마름모꼴 간격으로(막모) 모심기를 한다. 김매기 모심기 작업이 끝나면 호미로 애벌김을 매고 두벌김은 호미없이 손으로 맨다. 두렁밟기 모심기와 김매는 작업이 끝나면 두렁밟기를 하는데 두렁밟기는 우렁어리가 논두렁을 뚫 어놓아 논에 물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작업이다. 물푸기 갈수기에는 용두레를 지반에 따라 5단계까지 설치하고 저수전의 물이 줄어드는 것을 염려하 여 물푸기를 하여야 했다. 이때 흥겨웁게 용두레질 노래를 부르며 물을 퍼올렸다. 들놀이와 파접놀이 모심기와 김매기 물푸기 작업이 끝나면 들놀이를 하고 아랫마을 농기와 웃마을 농기가 가락에 맞추어 기절을 하고 한 장소에 모여 농악 1채가락부터 7채가락까지 치며 전원이 즐 거운 파접놀이를 한다. 악기 : 광쇠, 징, 호적, 북 각 2조 쌍피리 4조 모찌기 : 용두레20조 모형모 1,000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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