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고 해서 삼랑성(三郞城)이라고 부른다. 마니산 참성단과 더불어 단군과 연관된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지는 귀한 역사 유적이다.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에 단군의 세 아들이 삼랑성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는 기록이 있다.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하는데 성의 둘레는 대략 2,300m이다. 축성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거친 할석(割石)을 사용한 삼국시대의 축성 기법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쌓은 성으로 추정한다. 1739년(영조 15)에 중수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宗海樓)라 하였고, 1764년(영조 40) 다시 성을 중수하였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양헌수 부대가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해오던 프랑스군을 물리친 승전지이다. 삼랑성 안에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전등사가 있다. 고려 대몽항쟁기에 성 안에 가궐(假闕)을 지었는데 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선시대 후반 정족산 사고를 짓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 등을 봉안했으며, 군사 시설로 정족진을 설치했었다.
[참고문헌] 이형구·노태천, 『백제논총』제5집, 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96 강화군, 『강화 삼랑성 여장 조사보고서』, 강화군, 2005. 육군박물관, 『강화군 군사유적 지표조사보고서(성곽·봉수편)』, 육군박물관 유적조사보고 제7집, 2000. 육군박물관, 『강화도의 국방유적』, 강화군·육군박물관, 200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웅진출판, 1997. 강화군군사편찬위원회, 『신편강화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