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했다 한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고종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도 한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강화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 정자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세워져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정자 양쪽에는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이곳은 과거에 민간인통제구역이어서 일반인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 2008년 민간인통제구역에서 해제되어 현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탐승하고 있다.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소, 『월곶진지』, 국립문화재연구소, 2010. 강화군사편찬위원회,『신편 강화사』, 강화군, 200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웅진출판 1991. 문화재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