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병자호란 이후 서해안 수비체제가 강화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경기 서남부 해안의 진(鎭)들이 강화도와 강화도 근처로 옮겨오게 된다. 1653년(효종 4)에 남양의 영종진이 인천부 자연도로 옮겨왔다. 영종진이 자연도에 자리 잡으면서 섬의 이름도 영종도로 바뀌게 된다. 영종진을 남양에서 자연도로 옮긴 것은 자연도가 해상에서 강화도로 진입하는 길목이라는 중요성 때문이다. 이제 영종도는 강화도를 지키는 1차 방어선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초지진은 1656년(효종 7)에 안산에서 옮겨왔다. 초지진에서 초지돈대·장자평돈대·섬암돈대를 맡아 지휘했다.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 미군과 충돌했던 격전지이다. 1875년(고종 12) 일본 운요호 사건 때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당시 초지진을 지키던 조선군은 일본군을 격퇴했다. 패퇴한 일본군은 철수하면서 영종도를 해코지했다. 이후 초지진은 허물어졌고, 초지진이 관할했던 초지돈대만 남았다.
정비된 초지돈대 안에는 대포가 전시돼 있다. 돈대 옆 소나무에는 신미양요 혹은 운요호 사건 때 포탄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육군사관학교, 『강화군 군사유적 지표조사보고서(돈대편)』 육군박물관 유적조사보고 제6집, 1999. 문화재관리국,
『강화전사유적보수정화지』, 문화재관리국, 1978. 육군박물관, 『강화도의 국방유적』, 강화군·육군박물관, 200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웅진출판, 1997. 송양섭, 「17세기 강화도 방어체제의 확립과 진무영의 창설」, 『한국사학보』13,
2002. 이민웅, 「18세기 강화도 수비체제의 강화」, 『한국사론』34,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