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강화군강화군 문화관광

닫기

강화날씨맑음

맑음
11.0℃

컨텐츠

전설

  1. HOME
  2. 문화유산/역사
  3. 이야기속강화
  4. 전설

전등사의 은행나무

작성자
본청/문화관광과(-)
작성일
2022년 5월 31일(Tue) 14:30:27
조회수
2963
배불숭유의 정책을 폈던 조선에 들어오면서 전국의 사찰은 조정으로부터 여러 가지 박해를 받게 되었다.

승려는 성곽을 쌓거나 다리를 놓는 일에 사역을 나가야 했고, 사찰에서는 제각기 특산물을 공물로 바쳐야만 했다.
강화도에 있는 전등사에서는 매년 은행을 공물로 바치도록 명령했는데 절어귀에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그루의 은행나무에서는 열매가 가장 많이 달릴 때에 열가마니 정도 은행을 수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스무 가마니를 공물로 바쳐야 한다고 관아에서 명령해 왔다. 전등사의주지 스님과 그 밖의 스님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풍년이 들어야 열 가마니인데 스무 가마니를 공물로 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은행을 사드릴 재력도 없었다. 스님들의 걱정은 더 커졌다.

"은행이 많이 수확되도록 염불을 올립시다." 주지스님의 제의에 따라 은행나무 밑에 제단이 차려지고 3일 기도회가 열렸다. 이 소문이 절 아래 마을들에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기도제를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관가에서도 이 말을 듣고 신기하게 여기며 몇몇 포졸들을 파견했다. 주지 스님의 염불이 한창 진행될 때 포졸 한 놈이 스님에게 모독적인 언사를 했다. 곧 벼락이 치드니 포졸 한 놈이 꼬꾸라졌다.

"이 은행나무에 제발 은행이 열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나무관세음보살." 주지스님은 이 은행나무에 향후 천년 만년 은행이 열지 않게 해 달라고 기원을 했다. 그러자 벼락과 뇌성이 울리면서, 은행나무에 달렸던 은행 알은 모조리 떨어지고 기도회를 드리던 제단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그후 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에는 은행이 열리지 않게 되었다

목록

정보관리

  • 담당부서 : 국가유산과
  • 담당팀 : 국가유산정책팀
  • 전화번호 : 032-930-3126

컨텐츠만족도 만족도 보기

전설 QR코드

QR CODE 이미지를 스마트폰에 인식시키면 자동으로 이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OPEN 공공누리 | 출처표시+상업용금지+변경금지  |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한줄 의견달기 한줄 의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