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기분 나쁜 강화병원...
- 작성자
-
이**
- 작성일
- 2007년 8월 31일(Fri) 11:21:09
- 조회수
- 3507
8월 23일 엄마의 전화를 받고 부랴 부랴 강화병원으로 달려간 시간.. 9시 40분쯤. 강화병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쯤... 오전 9시 35분... 아버지가 엠블런스에 실려 강화병원에 도착한 시간입니다. 멀리서 출발하신 엄마는 10시 30분쯤 도착하셨나 봅니다. 병원에 도착했을때 부터 아버지는 이미 사망상태라고 의사가 말합니다. 가족들은 넋이 나갔죠... 8시 30분 출근때 웃으며 인사하고 대화했던 아버지가.. 불과 1시간 만에 돌아가셨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엄마도 그러시더군요. 8시까지만 해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셨다고... 근데 갑작스레 돌아가셨습니다. 저희 아버진 30년 넘게 오토바이를 타시던 분으로 가족들이 모두 인정 할 정도로 오토바이를 잘 타십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봤을때.. 오토바이에 양쪽 발이 모두 올라가 있다는것과, 그냥 오토바이 타시는 모습 그대로 쓰러지셨다는게 뭔가 이상했죠... 이건 오토바이 타고 사고가 난게 아닌.. 뭐가에 의해 고통을 받으시다 푹 쓰러지셨다는걸 가족들은 알수 있었습니다. 쓰러지시고 부터 심장이 미흡하게 뛰었다는 주변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어떤 몸부림도 못 하신체 오토바이 위에서 그대로 푹 쓰러지신겁니다. 저랑 어머니는 아버지가 평소 병원에 다니지 않으셨고, 가는것도 워낙 싫어하셨드래서 그다지 크게 불편하신 곳이 없나 라고 생각만 했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원에 도착하시고.. 얼마 안되 아버지를 그 하얀 천으로 덮으시더군요. 응급실 들어 오자 마자 계시던 아빠가.. 다른 환자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는지 아빠를 영안실로 내려 보내더군요. 그게 10시 45분쯤 이였을겁니다. 그렇게 아빠는 지하에 있는 영안실로 가셨습니다. 그 후 아들인 오빠가 도착하고, 한분 한분 친척분들이 도착하셨습니다. 오빠는 아버지가 초등 시절부터 인천에서 쭉 살아 오셨기에 인천에서 장례를 치르자고 합니다. 가족들도 그렇게 많이 반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40년 넘게 인천에서 사셨던 분이고 강화에서는 이제 겨우 4년 살았는데... 가족과 친지 분들의 의견을 모아 인천에서 장례 치르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리고 병원측이 어머니께 묻습니다. 아빠가 평소 편찮으셨던 곳이 있는지, 병원 기록이 남아 있는지 등등.. 많은걸 엄마와 얘기 하더군요. 15년 전쯤 동맥경화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인천 중앙 길병원에서 받았다. 그 후로는 몸이 좋아져 병원에 가신 적이 없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어머니가 아무래도 심장마비 같다. 오토바이를 워낙 좋아하고 잘 타시는 분인데 그 조그만 웅덩이에 중심을 잃고 쓰러지다 다치실 분이 아니다... 젊어서 운동을 많이 하셨었고, 날렵한 저희 아빠가.. 중심 잃고, 넘어지는 오토바이 위에 그냥 가만히 앉아 계실 분이 아니다... 아무리 설명하고 설명을 해도.. 사망원인 : 미상... 질병에 의한 사망이 아니기에 사망진단서를 떼어 줄수 없다는 겁니다. 이러면서 저희 유가족들은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걸 뭐라 하고 싶은게 아닙니다. 의료행위가 잘못 됐다 따지고 싶은게 아닙니다. 다만.. 장례를 인천에서 치르겠다고 말 한 뒤 병원측 행동들입니다. 사망원인을 미상으로 한 뒤 바로 형사 두분이 다녀갔습니다. 질병에 의한 사망이 아니므로 경찰 조서를 받아야 된다고, 그렇게 오빠와 목격자 아저씨를 태우고 사고 지점으로 갔습니다. 저도 뒤 따라 갔다가 병원으로 형사님과 같이 돌아 왔습니다. 형사는 사고 목격자의 진술을 들었으니 됐다는 식으로 경찰서로 돌아가고.. 저희 유가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체 영안실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경찰 다섯분 이상이 영안실로 오셨습니다. 경찰차만 3~4대가 오더군요. 좀 직급이 있으신 분만 제외하고 저와 같이 다시 사고 지점으로 향했습니다. 이런 저런 목격자 진술을 또 듣고서는 다 같이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시길래 병원 안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그때 병원비 얘기가 나왔는지.. 엄마는 의사 선생들과 실갱이를 하고 계셨습니다. 사망진단서도 안 떼어줘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도대체 너희들이 한게 뭐냐며 엄마는 큰 소리를 치고 계셨습니다. 예전에 동맥경화로 치료를 받았었고 가족 모두 심장마비라고 하는데 왜 사망진단서를 안 떼어 주냐며 MRI 촬영을 하자고 엄마는 계속 목청 높여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MRI 촬영을 해서 뭔가 병명이 나오면 사망진단서 안 떼어준 너희들 가만 안 둘것이며 아무 병명이 안 나오면 처음 병원비부터 MRI 촬영비까지 모두 군소리 없이 내시겠다고.. 그때 병원측에서 하는 말이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죽은 사람 MRI 촬영 못해주니까 국과수에 의뢰해서 부검을 하라고 하더군요.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고 싶으면 부검 밖에 없다고... 돌아가신 분을 또 한번 죽이라고 병원에서 말하더군요. 옆에서 듣고 있던 저는 황당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시체를 땅바닥에 내팽개쳐 놓고도 할말이 있냐는 엄마 말씀.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경찰 아저씨가 어머니께 자기네가 하는 방식으로 사고로 일을 처리 한 뒤 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사망진단서를 떼어주겠다며 엄마를 모시고 갔습니다. 그렇게 경찰과 엄마가 뒤 돌아 서자 마자 그 의사가 한다는 말이... 경찰이 싸움을 붙이네 붙여.. 그건 싸움을 붙이는게 아니라 유가족 입장을,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고, 도와주고픈 경찰의 마음 아니였을까요..? 엄마 말씀을 반신반의 하며 아빠가 계신 곳으로 내려가 봤습니다. 정말 황당하더군요. 아무것도 없이 그 차디찬 맨 땅바닥에 아빠가 누워계셨습니다. 당신들 아버지고, 자식이고, 형제면 이렇게 모시겠냐고, 이게 뭐냐고 저는 항의 했습니다. 제가 말 할때까지만 해도 협조 해 달라는 말만 했을 뿐 아무 반응도 없던 영안실 측에서 어머니와 고모가 큰 소리로 또 다시 항의 하시자 그때서야 침대 비슷하게 생긴곳으로 아빠를 옮기더군요. 그렇게 흥분하고 있던 저희 가족들은 한숨 돌리고 진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3시쯤인가... 경찰 아저씨가 큰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조서 때문에 경찰서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저런 진술을 하시고 5~6시쯤 병원으로 돌아오셨습니다. 한참 후 저녁 7시쯤 어머니께서 보이지 않아 어디가셨냐고 찾아 다녔습니다. 응급실 앞에 있는 MRI 촬영실 앞에 계시는 엄마. 그때서야 아빠는 MRI 촬영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빠 MRI 촬영하는걸 보고 저는 영정사진을 찾으로 읍에 있는 사진관에 다녀왔습니다. 저녁 7시 30분쯤 응급실 앞에 엠블런스가 한대 있었고 가족 모두 장례를 치르러 나가기 위해 정신들이 없어 보였습니다. 영정 사진만 건네고 한차 한차 인천으로 나가 장례를 치뤘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 후 보게 된 사망진단서.. MRI 촬영 후 나오게 된 사망원인.. 역시 가족들의 말처럼 1차 원인 심장마비, 2,3차 원인 동맥경화, 뇌출혈... 오전 11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면 저녁 7시 30분.. 장작 8시간 이상을 아버지를 아무 대책 없이 방치했던거죠. 가족이 원하면 낮 1~2시쯤 충분히 MRI 촬영을 해 줬어도 될 것을 부검하라는 말로 거부를 하고, 인천에 안치 시켜 드린다니 선구를 땅바닥에 내팽개쳐 놓고... 이건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병원측 사람들이 자기네들 돈 벌겠다고 유가족과 실갱이 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고.. 머리에 든 지식이 많아질 수 록 사람을 배려하고 마음 헤아려 주는 심성은 없어지는지... 입장 바꿔 자기네 부모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셨는데 병원에서 부검하라는 말을 한다면 자기네 들은 의료법 찾아 가며 우리보다 더 큰 소란을 피웠겠지... 저흰 아버지를 살리지 못했다고 병원과 의사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인을 향한 의사들의 심보가 괘심하여 이렇게 항의를 하는겁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과연 아픈 사람들을 정성껏 치료해주고 보살펴 줄 덕을 갖췄는지... 강화군 6만5천명의 군민을 보살피기에는 너무나도 예를 모르는 사람들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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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위로를 보내드립니다... .....| 200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