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 교동도 하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동면은 과거 일정기간 郡이었던 지역이 일제시대(1914년)때 강화군에 편입되면서 2개면(화개면, 수정면)으로 나뉘었다가 현재의 교동면(1934년)으로 통합되었으며 60년대에는 인구수가 1만 2천명까지 살던 곳이다.
또한 북한과의 거리가 불과 2.6㎞밖에 떨어지지 않아 철조망 너머 북한의 모습을 육안으로 생생히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6.25 전쟁중에 황해도 주민들이 피난와 임시로 정착한 곳이 현재의 대룡시장으로 남아 있으며, 비록 지금은 침체되어 있지만 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전통시장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1박2일과 전설의 마녀 촬영지이기도 하다.
과거 몽고 침략시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하며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자급자족의 일환으로 간척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교동도에도 엄청난 면적의 농경지가 마련되었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65.1kg)을 감안할 때 교동도에서 1년 생산되는 쌀은 교동면민은 58년, 강화군민은 약 4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 생산된다. 그래서 교동은 옛날부터 부촌이며 남부러울 것이 없어 교동민국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특히 수도에서 가까운 교동도는 고려의 희종과 조선의 연산군, 광해군은 물론이요 안평대군 등 숫한 왕족들의 유배지였던 곳이자, 군사전략적 요충지로써 그 위상이 대단했던 곳이며, 전국 최초라 할 수 있는 교동향교가 있어 유교문화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교동도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어머니의 품과 같이 따스함이 묻어 있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미지의 섬이자, 6․70년대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모습이 남아 있는 옛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인심 좋은 고장이고, 가축이 거의 없고 공장이 전무하여 오염원이 없는 그야말로 청정지역인 것이다. 지난해 교동대교 개통 이전까지는 외지인의 발길이 가뭄에 콩 나듯 하였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교동도에서는 한 발 디디면 마음의 평화를 얻고, 한 발 더 디디면 넉넉한 인심에 풍요로우며, 한 발 더 디디면 정겨움이 묻어 나는 곳이다.
마음이 급하거나 뭔가 특별한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훗날 교동을 방문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롭게... 천천히... 고향산천을 기억해 보고... 실향의 아픔을 뒤로하며... 옛 정취를 품어보고... 소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반드시 교동도를 방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