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위치
강화는 갑비고차(甲比古次)였다.
고구려 때는 혈구군(穴口郡)이었으며 수지현(首知縣)·동음내현(冬音奈縣)·고목근현(高木根縣)이 있었다. 이후 신라의 경덕왕이 해구(海口)라 고쳤으며, 수지현은 수진(首鎭), 동음내현은 강음현(江陰縣), 고목근현은 교동(喬桐)으로 바뀌었다. 그 후 문성왕이 혈구진(穴口鎭)을 설치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초에는 열구현(冽口縣)이라고 부르다가 몽골 침입으로 고종 때에 수도를 옮기면서 강도(江都)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말기인 우왕 때부터 강화라고 칭하였다.
상고시대
갑비고차
서기 475
고구려 장수왕시 혈구군으로 개칭
서기 757
신라 경덕왕시 해구군으로 개칭
서기 844
신라 문성왕시 혈구진 설치
서기 940
고려 태조 강화현으로 개칭
서기 1232
고려 고종 강화군으로 승격
서기 1363
고려 공민왕 강화부로 승격
서기 1394
조선 태조 강화도호부 설치
서기 1627
조선 인조 강화유수부로 승격
서기 1895
조선 고종 강화군으로 개칭
서기 1896
조선 고종 강화부로 승격
서기 1906
강화군으로 개칭
서기 1914
교동군을 강화군에 편입
서기 1962
볼음출장소 설치
서기 1973
강화면을 강화읍으로 승격
서기 1995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통합